시궁창에서 스스로를 꺼내려면 루틴이 필요하다

매일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확고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 갖게 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행동 패턴.. 정도를 루틴(routine)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얾… 그게 뭐야. 일단 설명은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그냥 예시를 보자.

  • 매일 운동을 하겠다.
  • 매일 독일어를 공부하겠다.
  • 매일 책을 읽겠다.
  • 매일 글을 쓰겠다.
  • 매일 7시간 이상 자겠다.

저 확고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사람은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높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적절한 시간대에 각각의 항목을 배치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런 하루를 살게 된다.

  • 6시 45분에 일어난다.
  • 체중을 재고 양치를 한다.
  • 커피를 내리고
  • 독일어를 공부하고
  • 책을 읽는다

일단 여기까지, 방금 일어나서 다시 싱싱해진 두뇌를 일하는 데 사용하기 전에 먼저 나를 위해 사용한다. 몸은 아직 운동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다.

  • 오전 일을 한다.
  • 점심을 먹는다.
  • 15분의 짧은 운동을 한다.
  • 오후 일을 한다.

오후 일과가 끝났다. 15분의 운동은 혈당과 식곤증에 좋다.

  • 저녁을 먹는다.
  • 45분 운동을 한다.
  • 냉수 샤워를 해서 정신을 다시 각성시킨다.
  • 글을 쓴다.
  • 밤 11시에 침대에 눕는다.

소파에 널브러질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본다.

당연히 이건 내 루틴이다. 나의 하루는 뻔하디 뻔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가끔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오면 순서에 약간의 변화만 줄 뿐, 하는 행동들은 언제나 같다.

루틴이 깨지는 날이 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 한다던가 하는 날. 그런 약속이 저녁에 배정되어 있다면 오전에 최대한 할 일을 미리 처리해 두고 저녁 시간은 비운다. 다음날은 조금 피곤한 상태에서 원래의 루틴을 가볍게 수행한다. 정말 피곤하면 하루 온전히 쉰다.

정말 정말 몸도 마음도 처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럴 땐 매우 낮은 강도로 모든 루틴을 수행한다. 그렇게 하는 게 귀찮을 뿐, 이미 오랜 시간 반복해 온 일들을 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면 아무리 몸과 마음이 쳐지는 날이어도 기분이 하수구에 처박힐 정도로 망가지지 않는다.

루틴이 몸에 익으면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서 알람도 필요 없어진다. 한국으로 긴 휴가를 다녀와도 시차 적응에 이틀이 걸리지 않는다. 루틴을 통해 금방 다시 독일의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이런 게 긍정적 루틴이다. 반면 나의 20, 30대엔 루틴이랄 것이 딱히 없었다. 매일 하고자 했던 무언가도 없었다. 그저 일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반복했다. 몹시 후회한다.

  • 8-9시에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일어난다.
  • 9-10시에 출근한다.
  • 밤 9-10시에 퇴근한다.
  • 술을 마신다.
  • 0-3시 사이 취한 채 집에 와 잔다.

……..미친놈. 저런 게 미친놈이지. 미친놈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저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한다. 하.. 나의 젊은 날은 똥멍청함으로 가득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집에 일찍 와서 샤워하고 퇴근할 때 사 온 맥주를 마시면서 SNS나 하다가 잔다. 자.. 이 루틴(이라고 하자)의 문제가 무엇일까? 일단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운이 좋아 어떤 계기로 운동 같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치자. 어디에 끼워 넣을 것인가. 나는 생활을 내가 만들지 않는다. 생활이 나를 끌고 다니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운동 시간을 만들어 냈어도 저 루틴은 다른 것들을 쉽게 끼워주지 않는다. 운동은 다시 루틴에서 스리슬쩍 빠져 사라진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루틴 자체가 유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독일에 와서도 2-3년 정도 저것과 대동소이한 (루틴이 없는)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어느 날 나는 엠뷸런스를 탈 정도의 건강 위기를 겪었다. 그 후부터 유지 가능한 건강한 루틴을 조금씩 만들어 왔다.

좋은 루틴의 재미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미 가득 찬 하루에 틈을 만들어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속하다 보면 어느 날 그 행동은 습관이 되어 몸에 익어 있다. 나중엔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진다.

요즘은 루틴을 만들어 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매력을 느끼며 ‘오래전부터 루틴을 갖고 10년 넘게 살아왔으면 나는 무엇이든 이루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빛나던 시기를 허투루 보낸 후회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고, 앞으로 잘하면 되지.

어쨌든 루틴의 키포인트는, 무엇보다 우선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다. 그다음, 하루 5시간 투자하고 말 것을 하루에 1시간씩 나누어 5일을 투자하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이런 식의 시간 배분에 더 효과적인 결과를 준다. 예를 들면 당신이 하루 5시간 운동하면 당신은 다음날 골병 들어서 침대에 누워 ‘좋은 추억이었어 후후..’라며 회상하겠지만, 당신이 하루 1시간씩 5일 동안 운동하면 그건 건강한 신체를 갖는 아주 좋은 출발을 했음을 의미한다.

지금 무엇을 하며 살지 몰라도 괜찮다.

일단 루틴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누구든 잠은 자니까, 일단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딱 정한다.

일어나서 몸이 부팅될 때까지 할 사소한 행동들을 의식적인 순서대로 반복한다.

운동과 독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기 아주 만만한 긍정적 항목들이다.

삶의 구원자, 루틴을 신봉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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