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 성공이 보장된 도전은 도전이 아니다

내가 독일에 오게 된 과정은 사실상 50%의 실력과 50%의 운이다. 독일로 떠나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한국에서 이미 8-9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었으니 해외취업을 계획하는 입장에선 남아도는 경력이었다고 봐야겠다. 해외취업에 좋은 경력은 얼마만큼이 맞다는 법 같은 건 없지만 개인적 경험과 느낌으로 볼 때 경력 3-5년과 적당한 포트폴리오 정도면 충분히 해외에서도 경쟁력 있는 이력서를 들고 도전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본격적으로 개발자 경력을 쌓기 시작할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함께 시작해서 3-5년쯤 후엔 그만큼의 경력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동시에 갖고 좀 더 어렸을 때 해외로 뜰 것 같다.

근데 뭐, 인생은 원래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애당초 내가 바라는 무언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기 전까진 내가 미래에 그 걸 바라게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 실력 같은 게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 어떻게 알고 미리 공부해 두겠냐고. 그러니까 사실상 인생이라는 건 <내가 과거로부터 지금껏 무언가를 좋아해서 아무 목적이 없어도 나름 진지하게 쭉 해오는 와중에, 요즘 내가 새롭게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내가 과거로부터 이미 오랫동안 해왔던 그것이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의 예술이다. 로또 당첨이 운이 아니고 이런 게 바로 인생의 운인 거다. 내가 뭘 하고 싶은데 준비물이 이미 다 내 손안에 있어. 그런 거.

나의 경우가 그랬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나는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었다. 이 지구라는 곳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세계지도를 보면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개미로 살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과거에 영어를 꽤 진지하게 공부했었고, 대학교에서는 더 끌린다는 이유로 전자공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전과 후 졸업했으며, 이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경력이 몇 년 정도 쌓여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 동료 때문에 빡치는 일이 있어서 홧김에 들어간 잡코리아에서 읽게 된 채용공고를 통해 ‘독일에서도 IT 회사들은 영어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준비물은 독일행 비행기 티켓 빼고 다 손에 쥐고 있던 셈이다.

엄밀히 말하면 비행기 티켓 말고도 출근이 확정된 독일의 직장과 퇴근 후 잠을 잘 집이 필요하긴 했는데, 나는 내가 이걸 준비한다고 미적거리다가는 당연히 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음날 짬뽕으로 해장이나 하면서 흐지부지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에겐 일단 현지로 떠나는 것이 나를 해외취업에 성공시키는 공략(…)이라는 것도, ‘나’라는 인간과 평생 지내오면서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독일에 왔다. 베를린의 한 에어비엔비를 한 달 빌렸다. 그리고 구직을 시작했고, 한 달이 안되어 면접에 합격했다. 내가 이런 얘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네이버랑 인터뷰도 해서 기사로 나고 했거든. 그런데 코멘트로 하나같이 달리는 내용으로 너무 위험해서 시도하면 안 된다거나, 한국인에겐 한국이 가장 살기 좋다거나(그런데 어째서 자살률이 1위인 거냐고), 나라 버리고 이민 갔으니 다시 한국 돌아와서 세금 축내지 말고 거기서 늙어 뒤질 때까지 살라는 안중근 빙의된 애국 열사의 개소리들을 읽다 보면 나는 참 다행이라 느낀다. 아무나 시도하고 아무나 성공하는 정도의 난이도였으면 나는 인생에서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할만한 스토리 하나가 줄어드니 말이다.

대체 100%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에만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인생은 얼마나 뻔한 경험들로 가득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나는 애초에 실패하는 경우도 내 삶의 경험으로 끌어안으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다. 해외취업에 실패하면 죽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없다. 그냥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 보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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