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하려면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가

“해외취업하려면 영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이게 해외취업 관련해 내가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이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땐 질문 자체의 모호함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내 동공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를 어떤 식으로든 설명했다고 치자. 그러면 내가 의미하는 그 ‘어느 정도’를 듣는 사람도 동일하게 느끼고 ‘아아.. 그 정도구나.’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매우 한국적인 답변으로 “토익은 몇 점 이상 토플은 몇 점 이상은 하셔야 합니다.” 하는 식의 답변은 의미가 없다. 회사는 이 사람의 영어시험 점수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사람과 영어로 함께 일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질문은 모호함을 걷어내면서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누군가가 “아니 그럼 어떻게 질문을 하란 말이냐?”라고 내게 물으면 어떻게 답변할까 고민해 봤거든. 근데 나도 딱히 저렇게밖에 물어볼 방법이 없을 것 같단 말이지(…). 해외취업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하겠냐고. 더군다나 해외취업한 사람을 찾아서 그들에게 질문을 했다는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 노력을 존중받아야 해.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높은 확률로 해외취업을 하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저 질문이 저리 두리뭉실해도 답변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나는 토익은 태어나서 두 번 봤다. 고등학교 때 원어민 교사를 짝사랑(…)해서 미친 듯 영어공부를 했지만 그 교사가 계약 만기 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나도 영어와 작별했다. 그런데 대학교 때 장학금을 받으려면 토익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점수를 위해 공부하는 걸 극혐하는 스타일이라서 모의 토익 한번 안 보고 그냥 가서 시험을 치렀다. 690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토플은 본 적도 없다.

기억 상으로 호주와 캐나다였나, 아이엘츠 성적에 따른 가산점 같은 것이 영주권 심사 점수에 포함되는 식이었다. 어찌나 저따위 점수 따내기 용도의 강제 시험이 보기 싫었던지, 나는 영어 점수 같은 거 필요 없이 면접 후 입사만 결정되면 비자가 나온다는 독일의 채용공고를 본 그날 독일행을 결정했다.

고딩 때 영어에 좀 심취(…)했었고, 헐리웃 영화들을 많이 봤으니 나는 영어를 잘할 거라는 믿음(…)을 품고 독일에 갔다. 그리고 당연히 고교영어와 헐리웃 영화에서 듣는 영어가 얼마나 양반인지를 독일에서 실전을 통해 알게 됐다. 인도,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그리고 독일까지, 이곳저곳에서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의 영어 발음이 모두가 제각각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를 빼곤 모두가 서로 알아들으며 대화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도 어쨌든 일을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말을 했는데, 이게 내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말을 너무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지금 내 실력이 이 정도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이렇게 말을 이어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메타인지(…)가 자꾸만 나를 더 쭈구러들게 만들었다. 그렇다. 쭈구러들었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그런 시간을 거쳐 어느덧 7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의 영어는 7년 전보다 조금 더 늘었다. 별도로 각 잡고 공부한 적은 없고, 영어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직장이었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영어와 씨름하는 과정을 포함하니 당연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위의 근본적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한국 회사에서 한국어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이 입사했다. 그 외국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한국어를 하는데 당연히 유창하지 않다.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고 단어 선택이 엉뚱하기도 하지만 무슨 의미로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그리고 보니까 일도 열심히 하고, 직원들과도 어떤 식으로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그러면 그 외국인 직원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다.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영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에 대한 답이다. 이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해외취업을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영어를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내 전문분야의 어휘들을 익히고, 인터뷰와 업무를 영어로 시뮬레이션하면서 계속 중얼중얼 공부하고 준비해 나가면 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