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냈기 때문에 실패해도 괜찮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

  • 고교시절 딱히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졸업하며 지방대 진학, 대기업 낙방 후 그냥 당장 불러주는 곳에서 일하기 시작함. 중2병과 인내심 부족으로 퇴사와 이직을 반복함. 젊은 시기를 술 마시는데 탕진해 마흔이 될 때까지 모은 돈은 고작 3천만 원뿐. 심지어 마카오 카지노에서 몇 시간 만에 천만 원을 탕진한 적도 있음. 이직으로 얼룩진 이력서에는 이미 15개의 회사가 나열되어 있으며 이 중 5곳 만을 1년 이상 근무. 더 이상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음.

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도 있다.

  • 수능 전국 상위 9%로 국립대학교 공과대학에 특차 입학함. 졸업과 동시에 취업, 1년이 안 되어 퇴사 후 시작한 사업이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 소개되고 방송국에서 연기자로 활동함. 이후 안철수연구소에서 보안 관련 일을 하다가 이직 후 기술영업 경험을 쌓음. 국내 아이폰 발매와 동시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전직. 몇 년 후 독일로 이민, 영주권 취득. 자가와 자동차 소유. 독일 다임러, 알리안츠를 거쳐 현재 폭스바겐에서 억대연봉을 받으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 중.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더 잘 살아보기 위해 주식투자와 독서, 글쓰기, 운동 등을 매일 함.

누구의 이야기가 더 나은 삶으로 보이는가.

위의 두 이야기는 사실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건 본인 되시겠다. 흠흠(…)

첫 번째 이야기와 차마 미처 말하지 못한 더더욱 큰 실패들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제발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바보같던 나는 그저 잘하려고 했을 뿐인걸.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땐 그렇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관점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다. 내가 젊어서 바보 같았던 건 알겠고, 그래도 나는 되도록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나를 바라보려 계속 노력한다.

누구든 자신이 써내려 온 인생 스토리가 있다. 그 안에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이런 스토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20대 초반이었다면 “고교 졸업하면서 지방국립대 입학” 말고는 쓸 이야기가 그다지 없었을 거다(물론 고등학교 때 농구를 좋아하고 영어교사를 짝사랑하긴 했다).

어느 누구도 성공만으로 쓰인 인생을 살 수 없다. 어딜 찾아봐도 실패가 기록되지 않은 인생은 없다. 나도 아직 살아보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다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만 가지고 이야기해 본다면, 인생에 찾아오는 실패는 정말 괜찮다. 적어도 나에게 닥친 실패는 괜찮았다. 실패로 인한 화나거나 슬프거나 자책스러운 기분은 삶의 어느 특정 순간에 내가 느끼고 있는 기분일 뿐이지 언제까지고 그 기분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실패는 비로소 우리의 인생에 기록된다. 나빠진 기분 속에서 며칠간 정서적으로 휴식을 가지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분도 좀 풀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면 된다. 그게 실패했을 때 우리가 할 모든 일이고 유일한 길이다.

실패했다는 건 시도했다는 것이다. 시도했다는 건 실패를 각오하고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걸 왜 시도도 하지 못하는지를 고민할 필요 없다. 모두가 같은 것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 용기를 준비하는 데는 서로가 다른 시간이 걸린다. 그냥 우리의 속도대로 준비하고 적당한 때가 오면 행동에 옮기면 된다. 어차피 결과는 실력과 운이 50%씩 작용한다.

성공만으로 삶을 채우지 못해도 괜찮다. 언제든 나에게도 실패가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실패 앞에서도 나는 결국 다시 일어나 걸을 거라는 걸 알고 사는 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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