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건 뭘까..?” 이러고 있다

돌아보면 내가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한 건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시점이다. 그때 나는 대학 1학년 생이었다. 엄마는 내가 대학만 가면 공부와 시험 등에서 자유로워지며 여자가 줄을 선다(… 줄을 왜 서…)는 진부한 학부모 클리셰를 나에게 주입했는데, 그건 나이브한 나에게 정말 잘 먹혔다. 대학교에 간 이후에도 시험기간이면 엄마는 고등학교 때와 전혀 변함없이 나에게 공부하라 잔소리를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줄을 선 여자들은 어디 있는 거냐며 반항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천재도 아닌 내 머리를 너무 믿은 나머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부라는 걸 하긴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또한 그 점수로 타인과 경쟁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엄마가 말한 대로 대학교에 가서 시험공부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순진한 자식.

대학교 입학 전 생각이 저랬으니 오로지 A+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대학생들 틈에서(심지어 입학 전에 원서로 된 전공 서적을 사서 예습을 해 온 친구도 있었다) 나는 대학교가 이러니 앞으로 순수한 앎이나 지식의 탐구를 위한 공부는 내 평생 없을 것임을 직감하고 나서 무언가 심리적 허무감에 빠졌다. 지긋지긋한 경쟁과, 경쟁 이외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청소년에서 졸업하며 완전히 동일한 성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던 시기였다. 나는 더 이상 어느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방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달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때는 내가 행복하다 느꼈을까? 전혀. 내가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 자체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냥 등교를 하고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놀고, 점심시간엔 농구를 하고, 하교 후엔 학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자는 생활에서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뿐. 나는 그냥 적당히 몇 개의 할 것들을 하면서 그저 하루하루가 즐거웠을 뿐이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은 잡생각이 너무 많거나, 할 일이 아무것도 없거나, 지루함에 빠졌을 때 찾아와서 머리를 가득 채운다. 내가 그때 이후로 얼마나 오랜 시간 저딴 질문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히며 고뇌했을까? 자그마치 15년이다, 15년. 행복에 관한 답은 없다.

과연 행복하지 않거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가. 그렇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의 유무와 관계없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행복에 관해 질문하는 것을 멈췄다. 그 이후로 행복하냐고? 모른다. 생각 안 하니까. 다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나는 기분 좋은 날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면 내가 언제 기분이 좋음을 느끼는가. 맛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먹고 가벼운 농담 섞인 대화를 하며 산책할 때. 여행할 때, 여행 후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혼자 있을 땐, 무언가를 집중해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하거나 할 때. 하루를 꽉 차게 보내고 자려고 누웠을 때, 잠 잘 자고 일어났을 때. 그때 그냥 기분이 좋다. 그걸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긍정적 감정을 느낀다.

행복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행복이 뭔지, 내가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거 몰라도 괜찮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가?

우리 인생의 미래는 백지다. 우리가 그려야 할 무언가가 이미 각자 준비되어 있고 그걸 찾아서 해야만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식이 아니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삶이 백지임을 인식했다는 말이고, 그동안은 남들(보통 부모나 선생님)이 무얼 그려야 하는지를 알려줬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 백지에 무엇을 그릴 지를 발견해 내는 좋은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다. 시작은 손에 집히는 책이면 된다. 그러면 그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또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내 관심사가 점점 더 구체화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엔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행복에 관해 고민했던 내 시간 겁나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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