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인터넷에 떠도는 밈 중에 ‘결혼하지마‘라는 밈이 있다. 그 이외에도 ‘아내가 친정에 간다는 거짓 시무룩’ 밈 같은 것들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유부남으로서 무슨 말인지 온전히 이해한다. 그러나 동의하지는 않는다. 혼자 살다가 가끔 느끼게 될 분노와 그에 따른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은, 결혼한 사람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불시에 느끼게 될 비슷한 종류의 감정들과 그 밀도와 깊이가 전혀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짜증과 딥빡(…) 정도의 차이다.

인간의 뇌가 원래 부정적인 것에 더 집중하고 더 큰 자극을 느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조되지 않는 좋은 것들이 잘 안 보이는 법이다. 결혼이라는 주제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그 장점이 굉장히 과소평가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아내가 갓 태어난 딸아이와 지구 반대편 친정에 3개월 떨어져 있다’는 나의 상황에서 특히 더 진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중국의 범죄자 집단이 보이스피싱을 하는데 유용히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랑스러운 갓난 딸아이에게 주민번호를 발급받아 주고자 한국을 방문했고, 3주의 휴가를 모두 사용한 나는 먼저 독일로 돌아왔다. 아내는 한국에 3개월 더 머물고 돌아올 일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흠.. 매 끼니를 직접 요리해서 해결하려면 꽤 성가시겠는데.’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베를린에 돌아온 첫 주는 무언가 매우 새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한국에 있던 3주가 얼마나 길었다고, 꼭 어딘가 혼자 해외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밥도 적당히 패턴을 만들어 동일한 음식을 매일 요리해 먹었다. 나는 맛이 형편없는 정도가 아니면 무슨 음식이든 잘 먹는다. 매일 닭 허벅다리 살 한 덩이를 후추로 양념 후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구워서 익힌 고구마와 함께 먹었다. 그게 지겨워지면 산책 겸 집 근처 버거 집에 가서 치즈버거를 먹었다. 언제나 돌봄이 필요한 갓난아기와 그 아기를 돌보던 아내가 없으니, 집은 나의 숨소리, 재택근무로 일하며 치는 타자 소리, 걸어 다니는 발바닥 소리 등으로 채워졌다. 평화로움이 가득 찼다.

한 달 즈음에 접어들 무렵의 어느 날, 문득 내가 외롭다는 사실과 아내와 아기가 몹시 그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드넓은 침대의 반쪽에서만 잠을 자고 있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을 사람도 없었다. 한국과 독일 사이의 시차로 퇴근 후엔 아내가 자고 있을 시간인지라 더 외로웠다. 혼자 하는 산책, 혼자 먹는 버거, 혼자 자는 잠. 혼자 맞이하는 아침.

나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우는 아기를 달래고 싶다. 똥기저귀를 갈고 싶어! 의도적으로 썰렁한 농담을 던지고 어처구니없어하는 아내를 보며 낄낄대고 싶다. 아내가 잠든 사진을 찍고 놀리고 싶다. 투덜거리며 함께 장을 보고 티키타카 하며 산책하고 싶다. 이 빌어먹을 퍽퍽한 닭의 시체는 언제까지 먹어야 한단 말인가. 고구마는 어째서 이름이 주는 느낌마저 숨 막히게 뻑뻑한 건지. 이런 시간을 두 달이나 더 보내야 한다는 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이런 글을 쓰며 심정을 글로 덜어낸다.

인터넷에 떠도는 ‘결혼하지마’같은 밈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결혼하지마’ 이면에는 혼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 행복과는 전혀 다른 디멘션(…)의 그것들이 추가적으로 존재한다. 아내만 두고 이야기해도 사실이고, 거기에 아기가 가져다주는 경험과 순간순간의 감정들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경이로움이며, 삶의 충만함이다.

한국의 혼인율과 출생률을 보고 있자면 나는 언제나 슬픔과 분노.. 음.. sangry(?) 같은 무언가를 느낀다. 얼마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저 수영은 커녕 물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떠 있기만을 위해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낭만도 없다. 무언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 국가는 연애와 결혼, 출산에 기여하는 한국의 인더스트리에 빵빵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나는 과거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부부싸움을 끝낸 직후(…)가 아니라면 이렇게 떠들고 다닐 거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하는 쪽을 추천한다고. 그래서 이 글은 ‘결혼하지마’와 반대로 ‘결혼해’라고 제목을 부여해서 균형을 맞췄음을 선언한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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