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

나는 약속을 안 좋아한다. 이유는 복잡할 게 없다. 그게 뭐가 됐든 지켜야 하잖아. 왜 지켜야 하냐면, 그건 약속을 한 상대에 대한 당연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소하다는 이유로 약속을 쉽게 깨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약속을 한 상대를 사소하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친구들이 이런 거 저런 거 하자고 제안하며 주말에 뭐 하냐고 물으면 약속을 하기 싫어서 언제나 열린 대답을 했다. “몰라.” 혹은 “봐서.” (재수 없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친구들이 한 제안들 중에 가장 마음 내키는 걸 골라서 했다. 그건 보통 농구였지만, 어디서 할지, 누구랑 할지, 언제 할지 등은 재미에 많은 영향을 미치니까.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건 친구들이 나와 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랑 노는 건 재미있으니까.

어째서 나는 지키는 걸 싫어할까? 나는 언제나 마음 내키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약속이란 걸 하는 순간부터 나에겐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생기게 되고, 그것이 나의 자유로움을 제한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약속을 확정하기 전의 내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엄청난 각오를 내면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일어난다. 그리고 대답한다. “알았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약속을 거의 깨지 않는다. 말도 없이 잠수 타는 경우는 당연히 없고, 혹시나 지키지 못하게 되면 상대에게 반드시 양해를 구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한편 살다 보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저절로 약속을 하게 된 후에 그걸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일단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게 큰 의미의 약속이었다거나 하는 것들. 이를테면 결혼(…)이나 출산(…) 말이다.

결혼이라는 건 내가 상대의 배우자가 되겠다는 약속이다. ‘배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약속의 핵심이다. 결혼 후에는 내가 배우자로서 기대되는 행동들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의미다(어…?). 그걸 결혼 후에 알아차린 나는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된 건지. 그래도 뭐, 알게 된 것이 어딘가.

아이를 맞이한다는 것도 같은 의미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누구와? 아이와 배우자에게. 이런 마음을 품고 아이를 인생에 받아들이면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아기 똥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그냥 덤덤히 하게 되는 거다. 피곤에 쩔어 있어도 기계처럼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 일해서 돈 벌어다 가족들 먹이 구해 오는 거다.

이런 고난도 약속들이 있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약속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나와하는 약속이다. 인간은 애초에 자신과의 약속을 깨도록 진화해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것에 능하다. 약속을 깰 이유를 만들어 내는 창의력에는 그 한계가 없다. 오늘부터 다이어트한다. 치맥콜? 콜. 오늘부터 금연한다. 한 대? 줘봐. 왜 이 약속을 지키는 건 그렇게 힘이 들까? 상대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속을 깨도 나의 사회적 관계망에 어떤 흠집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좀 깨고, 내 몸 좀 편하게 살자 생각하는 거지.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깨는 사람을 비난하지 못한다. 나도 종종 깨거든(…). 지키기가 정말 어려워.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한 것, 약속을 지키는 건 그 약속을 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킨다면 오늘도 나는 나를 존중해 준 것이다. 나를 사랑해 준 것이다. 나의 자존감을 고양시킨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건 타인 어느 누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오늘도 자신과의 약속을 깼어도 괜찮다. 그게 자신의 자존감을 땅바닥으로 패대기친 건 아니다. 다만 내일 또 덤덤히 지키려고 시도하면 된다. 실패하고 실패해도 계속 멈추지 않고 시도하면 그것 자체가 이미 성공 중인 거다.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 매일 1cm 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처럼 평범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에게 유일한 자기 변화의 길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해서 멋진 몸을 만들고 있고,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오늘 같은 금요일은 진짜 운동하기 싫어서 한숨만 몇 번을 쉬었는지. 그래도 했다.

한 달 동안 방치한 화장실을 청소하려면 하루가 걸린다. 반면 매일 5분씩 청소한 화장실은 청소가 필요할 정도로 더러워지는 법이 없다. 우리 삶도 그렇게 돌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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