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면접 불합격에 성공하다

나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다. 당시 삼성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었다(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다). 전공과 관계없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분야에서 실력과 재능이 있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대상이었다. 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과 함께 실무 면접을 통해 이 멤버십에 합격하면 최소 1년 이상 선택적 기숙 시설이 갖추어진 사무실 공간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창작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삼성은 그 프로젝트들의 진행비용을 제공한다. 그 후엔 졸업과 동시에 합격률 99%의 형식적인 인성면접을 거쳐 삼성전자 입사 특혜를 받는 제도이다.

당연히도 여기엔 별에 별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도는 학점과 스펙은 개나 줘버린,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영혼을 판 너드들을 오로지 실력만 보고 채용하겠다는 삼성의 의지가 반영된 삼성 등용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멤버십에 합격했을 때 내가 엄빠를 이렇게 기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아직 삼성 직원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에게 나는 이미 삼성에 취업한 아들이었다. 1년 후 나는 1%의 경쟁률을 뚫고 삼성 입사특전 불합격에 성공(…)했다. 어머니 아버지께 자식은 그렇게 쉽게 키우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안겨드렸다. 그분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실망감을 감추며 나를 위로해 줄 때 나는 울었다.

이때가 나에게 찾아온 인생의 첫 번째 큰 실패이자 꺾임이었다. 이후로 문득문득 합격률 99%의 형식적인 인성면접이라던 삼성이 나에게 불합격률 1%를 선물한 이유를 회상해 봤다. 면접관이 나의 학점이 어째서 그 모양인지(졸업학점 3.0이다) 질문했을 때를 기점으로 소위 압박면접에 들어갔다. 몇 번의 집요한 질문과 스트레스받는 답변을 주고받다가, 나는 그런 질문이 면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면접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벌(…)을 받았나? 그 벌은 누가 내린 거지..? 하지만 이건 추측이라서 여전히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 이후로 나는 압박면접을 극도로 혐오한다. 면접의 목적은 일을 잘할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압박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일을 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떠들어대는 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합리화다. 오히려 압박면접은 입사를 희망하고 있는 상대적 약자인 구직자에게 이미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면접자(자기와 회사를 동일시한다)가 우월감을 표현하는 행위일 뿐이다. 어떤 면접자도 좋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애사심에 원치 않는 압박면접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약자를 향한 존중이 없고 비열하고 역한 면접 형태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의 면접에서는 입사 희망자와 채용 희망자가 마주 보고 앉아 상대가 내가 원하는 걸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서로 존중하며 확인하는 대화가 오갈 뿐이다.

추가적으로 나는 다른 대안이 있다면 삼성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결혼할 때 혼수도 모두 LG 제품들로 장만했다. 애플 아이폰 3GS가 한국에 처음으로 발매됐을 때 한국의 초기 스마트폰 시장이 아이폰과 삼성 옴니아(…)로 나뉜 상황에서 나는 거지 같은 압박면접의 경험을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아이폰을 샀다. 그리고 이 선택이 나를 모바일 개발자로 만들었고, 결국 내가 독일에 올 수 있는 조건 하나를 채워 줬다. 그렇다고 삼성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쉽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이번에 43인치 모니터를 구매하는데 LG 제품보다 200유로나 저렴해서 어쩔 수 없이 삼성 걸 골랐다. 이 글도 삼성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작성 중이다. 제길!

하여간 나의 대학 졸업은 삼성 불합격으로 얼룩졌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상심한 부모님을 떠나 삼성 초봉의 반도 안 주는 작은 회사로 취업해 상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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