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전공을 선택하던 나를 구타하고 싶다

삼성 입사에 실패한 후 내가 홧김에 서울로 취업해 올라와 버리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나의 대학교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어서 즉시 실무에 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 졸업 시 전공이지, 사실 입학 때 내가 고른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당시 나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상위 10% 안에 드는 성적을 받았다. 이 퍼센티지가 전공 선택에 있어 좀 중요하다. 당시 나는 수의예과와 전자공학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당시에 대학교에서는 특차지원제도라고 해서, 내신성적과 관계없이 수학능력시험만으로 지원이 가능한 제도를 운영 중이었다. 나는 외워서 벼락치기를 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내신성적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차입학으로 대학입시를 끝내고 싶었다. 이 특차 지원을 전자공학과는 상위 15%, 수의예과는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만 가능했고 나는 둘 중 어디든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수의예과는 자격 자체를 턱걸이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탈락 가능성이 꽤 높다 볼 수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건 미친놈 아닌가 싶은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그저 친한 친구가 전자공학과에 지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따라서 전자공학과에 특차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내가 저울질하던 수의예과는 특차지원 정원이 미달이어서 당시 지원한 모두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는 아 그런가 보다 했던 일들이 요즘 시대의 반려동물 시장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수의사들의 수입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로 돌아가 고등학생인 나의 명치를 매우 세게 때리고 싶다.

당시엔 전자공학과가 컴퓨터공학과보다 커트라인이 높았는데, 그 이유는 대기업 취업이 더 잘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었고 전자공학과에서도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좀 알아보고는 ‘아아~ 가능한가 보네. 그러면 대기업 취업도 잘된다는데 여기로 가지 뭐.’ 하고 한 10분 생각해 보고 전자공학과에 지원을 했으니, 아아… 결과적으로 큰 문제가 안 생겼으니 망정이지. 모종의 문제가 생겼어도 나는 어떤 불평의 자격도 없다 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컴퓨터전공으로 졸업을 하게 됐을까?

전자공학은 매우 재미가 없고 심지어 프로그래밍도 새끼손톱만큼 밖에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내기 시절 알게 된 나는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휴학 후 군복무를 했고, 어느덧 복학할 때가 됐다. 학교에 복학을 알리러 갔더니 나보고 전공을 선택하란다. 음? 이게 무슨 얘긴고 하고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군복무를 하고 있던 시기에 전자, 전기, 컴퓨터 등 몇 개의 공학과들이 하나의 공학부로 합쳐졌고, 2학년부터는 그중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공 선택의 방식이 변경됐다는 것이다. 오 이런 행운이…!! 나는 전과를 위한 공부 따위를 하지 않아도 바로 컴퓨터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나는 전자공학과 입학, 정보통신공학부 컴퓨터 전공 졸업.

그렇다고 인생이 늘 이지모드였던 건 아니다. 전공 변경 전 인싸였던 나는 전공을 컴퓨터로 선택 후 선배도 동기도 후배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보통 혼자(…) 다니는 시크한 아싸의 길을 걷게 됐는데 이게 재밌는 게 그렇게 수업을 조금 들으면서 보니까 나 같은 아싸들이 몇몇 보였다. 우리는 쭈뼛쭈뼛 서로 모여서 인사를 하고 친해지고 수업도 함께 들었다.

나의 대학생활을 정리해 보자.

  • 수학능력시험 상위 10% 선방
  • 수의예과 특차입학의 기회를 쿨하게 버림
  • 전자공학과 입학 (이유: 친구를 따라서)
  • 군복무
  • 복학할 때 손쉽게 컴퓨터전공으로 이동
  • 아싸가 됨
  •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 활동
  • 삼성 면접 불합격
  • 상경

안 했어도 될 굴곡들이 보인다. 그중 나는 볼드 처리된 저 경험들이 결국 15년 후 내가 독일행을 가능하게 해 줬다 믿는다. 주식차트도 인생도, 지나야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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