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방심한 사이 청소를 하고 말았다

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하지만 청소는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평소 내 영역(책상이나 소파 등)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그 말끔하게 정돈된 물건들 위에는 하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아내는 나와 반대다. 정리정돈은 관심 없지만 먼지와 머리카락은 싫어해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로봇청소기가 책상 밑 내 발로 와서 깔짝거리곤 한다.

내가 왜 청소를 싫어하는지 생각해 봤는데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볼 정도로 먼지를 모조리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에 청소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인 것 같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싫은 걸 수도 있다. 아니, 청소라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 문제 아냐?

요즘엔 아내가 한국에 머물고 있는 관계로 혼자서 지낸 지 두 달쯤 됐는데 마지막으로 큰 마음먹고 청소한 것이 한 달 전인 것 같다. 화장실에 슬슬 머리카락이 쌓이고 있는 걸 봤지만 쿨하게 지나친 게 이미 두 주 정도 지났다.

사고(…?)는 오늘 터졌다. 오늘 저녁을 먹고 식기 세척기를 돌리기 위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빈 접시와 그릇들을 모아서 세척기에 넣고 돌렸다. 그렇게 하고 보니 그것만으로도 식탁이나 주방이 꽤 깔끔해졌다. 그러면서 그릇들이 가리고 있던 바닥의 얼룩이 드러났다.

‘흠… 주방과 식탁 얼룩들만 좀 닦아볼까..?’

행주로 얼룩들을 닦고 나자 주방이 더 말끔해졌다. 상대적으로 거실이 지저분해 보였다.

‘좋아.. 거실에 물건들만 대충 정리하자. 먼지는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이렇게 거실의 물건들을 정리했고, 그 후엔 뭐 불 보듯 뻔하다. 나는 진공청소기를 꺼내다가 거실이며 화장실, 각 방들, 결국 집 전체를 청소했다. 청소가 끝난 후엔 결국 꾹꾹 누르면 일주일은 더 버릴 수 있는 쓰레기도 내다 버렸다.

날씨도 더운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땀도 좀 나고 뭔가 운동도 한 기분이라서 기분이 좀 업됐다.

‘앗.. 이런 것에서 상쾌함과 보람을 느끼면 안 돼..!!’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고 찬물 샤워를 했다. 내가 기분이 좋은 건 운동을 하고 샤워했기 때문이지 오랜만에 청소를 해서가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청소를 극히 싫어하며 지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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