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완벽함과는 별개로 이미 완전하다

완벽하다, perfect: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

완전하다, complete: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

사람은 그 존재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미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태어나면서부터 실수를 통해 배우기 시작하며, 일생동안 배움의 주제에 변화가 있을 뿐, 언제나 그 배움은 실수와 함께 한다. 이는 마치 미국에서 로드트립을 하며 결코 닿지 않는 지평선을 향해 계속 자동차를 모는 것과 같다. 로드트립 얘기하니까 또 미국 가고 싶다. 무언가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그 사람보다 더 완벽한 사람의 눈에는 서툰 초보자로 보일 뿐이다. 이런 사실은 완벽주의자들에겐 저주와 같아서 혼신을 다하고 열정을 불태워 무언가 엄청난 (그렇게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도 더 쉽게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천재들을 필연적으로 접하며 언젠가는 내가 추구하는 완벽함에 다가갈 수 있을지 회의를 느끼곤 한다. 

내 아내가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 당연한 사실임에도 직업 요리사가 보기엔 적당히 재료만 가지고 노는 식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요리를 ‘완벽’하게 한다고 표현할 때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실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요리 흉내 좀 내는 식으로 보인다는 면에서 완벽이라는 것은 마치 객관의 영역에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개개인에게는 지극히 주관의 영역에 있는 개념이다. 어쨌든 내 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당연히 완벽하기도 하다(…). 아내가 “아.. 오늘은 완벽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할 때만 내가 면요리를 한다.

한편, 완전은 완벽과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처럼 엄연히 다르다. 어딘가에 완전하다는 말을 쓴다면 그것은 완벽함을 표현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완벽함이 결함 없음을 의미한다면, 완전함은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이 만족되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완전함에는 장점과 단점, 완벽하지 않음마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까 내 아내는 완벽하고, 나는 완전한 식이다(…).

알렉스 룽구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데 나는 그가 책에서 하고 있는 말에 동의한다. 자신이 가진 장단점과 전혀 관계없이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 이미 완전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사랑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잘 이해한 거 맞지?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완벽하지 않은 나를 괴롭히기를 멈추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내 단점마저 포용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들이 그들 스스로가 마음의 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도 그 도움을 받은 이들 중 하나다.

이런 진귀한 배움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어.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실을 나를 제외한 가까운 타인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있는 그대로 이미 완전하다는 사실은 나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다른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내 아내의 장단점에 관계없이 아내는 이미 그녀 자체로 완전하다. 내 딸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의 영역이 광활해졌다. 상대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 과거의 내 기준이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였다면 지금의 내 해석은 다르다. 일단 상대는 완전하고,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뿐인 것이다. 그런 행위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상대의 완전함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사실을 자주 까먹고는 1주일도 안 돼서 기억하지 못할 것들로 싸우곤 한다. 그래도 이런 사실을 깨우치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사는 것 자체로 완전한 거겠지.

사진은 내가 요리한 완전한 오일파스타. 영생 식단 동참하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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