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좀 제대로 만들자

나는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을 때 몇 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일단은 구매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지운다.
  • 그 물건이 이렇게 몇 번 더 생각나면 구매를 위한 조사를 시작한다.
  • 그 물건을 구매하면 추가적으로 혹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알아본다.
  • 갖고 싶은 물건 + 그 물건을 가짐으로써 추가적으로 함께 발생하는 비용을 내가 감당하고 지불할 가치가 충분한지 자문한다.
  • 그 질문에 대한 답이 “Yes”일 경우 비로소 구매하는데, 저렴한 가격보다 품질이 좋은 걸 구매한다.

예외적으로 가격이 몇 천 원 정도면 그냥 사지만, 그 정도 가격의 물건은 보통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위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는 보통 수 십만 원 이상 하는 물건들이 대상이다.

내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시간 낭비 줄이기, 충동구매 방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양품으로 구매하기 위해서다. 특히 어떤 물건을 샀을 때 추가적으로 사야 하는 물건들을 미리 생각해보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물건을 사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 새 모니터를 샀더니 20cm짜리 VESA어뎁터와 추가 HDMI 케이블이 필요해진다거나, 로봇청소기를 샀더니 소모품인 회전솔과 먼지필터를 주기적으로 구매해서 갈아줘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 같은 것은 말해 뭐 하랴, 구매 후 엄청나게 많은 추가, 유지 비용이 발생한다. 오일 교체, 필터 교체, 세차, 세차용품, 정기 점검, 타이어 구매, 교체, 보험료, 자동차세, 유류비, 수리비 등을 주먹구구 식으로만 따져봐도 전의를 상실한다. 내가 설령 1억이 있다고 해도 1억짜리 자동차를 살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찌 마음대로 되겠는가. 나도 충동구매를 한다거나, 싱크대 거름망 하나를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 시간 동안 리뷰를 읽으며 날려버린 시간에 고통스러워한다. 혹은 저 모든 조건을 만족해서 구매한 물건조차 그럴싸하게 광고한 쓰레기 같은 품질의 물건일 경우도 허다하다.

얼마 전 구입했던 바닥 매트가 있다. 세면대 아래에 깔아 두고 세면대를 사용할 때 바닥으로 물이 튀어도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마존에서 리뷰가 괜찮고 무난해 보여 샀다. 아니 인간적을 바닥 매트가 품질이 차이가 있어야 뭐가 있겠어. 그냥 적당히 좋아 보이는 거 사는 거지. 하지만 그건 나의 경기도 오산이었다. 이 매트가 오래되어 세탁기에 돌렸는데 바닥 쪽에 있던 부직포가 물에 녹아 보풀이 되어 흩날리며 다른 세탁물에 옮겨 붙었다. 나는 세탁기 문을 열면서 이 난장판을 보자마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 보풀을 털어내야 한다, 물론 잘 안 털어진다.
  • 반쯤 풀려 너덜거리는 매트 바닥의 보풀을 뜯어내야 한다, 물론 잘 안 뜯어진다.
  • 이런 거지 같은 일을 하는데 내 금쪽같은 시간을 써야 한다.
  • 매트를 그냥 버리기엔 수습의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다. 수습의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이 제품을 만든 회사를 마음속 깊이 저주했다. 나는 확신한다. 그들은 비용을 아끼고 이윤을 높이기 위해 저품질의 싸구려 재료를 사용했으리라. 그러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분명 알았으리라. 그래도 그 문제를 외면하고 그냥 판매했으리라. 나는 이따위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마인드에 역겨움을 느낀다.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에 일말의 자부심도, 책임감도 없는 기업. 이런 저렴한 물건들 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순살자이 같은 사건은 썩은 음식의 곰팡이가 속에서 피다가 피다가 결국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 눈앞에 나타나듯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이미 오랜 시간 다른 건설현장에서도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빼먹었다는 거고, 아무 문제 없이 오랜 시간이 흐르며 빼먹는 양을 점점 더 늘렸을 거다. 그러다 아파트가 이젠 정말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빼먹었을 때 결국 무너지며 이런 사고가 터지는 거다. 건설사든 시공사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질 치는 썩어빠진 기업과 그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제품이 저렴하던 비싸던, 크던 작던 소비자가 지불한 비용만큼의 품질을 제공해 주는 기업이 많은 세상에서 보풀 떼어내는 시간낭비 같은 것 좀 안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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