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입 다물고 아무 일이든 하는 게 답

당신이 평화롭게 당신이 익숙한 당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새로운 일을 가져왔다. 이 경우에 그 새로운 일을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나에게 주어진 그 일을 잘 해낼 확신이 서지 않아 자신감이 없다.
  2.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낼 체력마저 부족한 상태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꽤 높은 확률로 이유는 위와 같다. 심지어 다른 이유라고 생각했어도 솔직하게 본인에게 자문자답해 보면 위의 이유에 들어맞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태가 되면 일단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결국 화를 내며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1. 이 일은 내 일이 아닌데 어째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야.
  2. 도대체 시간낭비뿐이기만 한 이 일을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어.
  3. 이 일을 만들어서 나에게 준 저 사람은 일을 정말 못해. 함께 일하기 싫어.

현실을 부정하고 남 탓을 한다. 이렇게 불평하고 화를 내는 시간은 팀에게도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겐 조금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단 속은 시원하니까. 하지만 그것뿐이다.

시원하게 화를 내고 불평을 했다면, 이제 해결방법을 찾아보자.

  1. 일단 주어진 일을 거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 하던 일을 한다.
  2. 그 상태로 우선 제풀에 그걸 내 일로 받아들일 시간을 한두 시간, 길면 반나절 정도 갖는다.
  3. 이제 그 일을 받아들였다. 차근차근 식은 머리로 해결할 방법을 찾거나 동료에게 물어본다.
  4. 일은 막상 해보면 보이는 것보다 어렵거나 큰 경우는 드물다.
  5. 바로 처리 가능한 것부터 시작한다.
  6. 하다 보면 다음 할 일이 보이고, 점점 더 잘 보인다. 그러다 보면 일은 끝났다.
  7. 그러면 이제 사람들은 그 일을 항상 당신에게 시킨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자신감을 ‘삶의 문제를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을 빌어 전한다. 일터에서의 자신감은 주어진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내가 일을 하다가 뭔가 부정적 감정에 빠졌다면 그건 그 믿음의 부재, 즉 일을 제대로 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체력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만사 귀찮고 성질 더러운 직장인 되는 거다.

아, 이딴 거 모르겠고 나는 그냥 막 화나고 일하기 싫어. 이 일은 내 일이 야니야! 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즉효약이 있다.

니 일 내 일은 따로 없다. 회사는 당신을 고용했고 당신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회사는 당신에게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줄 수 있다. 그 일이 당신의 전문성과 전혀 관련이 없어서 불만이라면 그런 대우를 해주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된다. 이직하기 싫으면 지금 회사가 주는 일을 하면 된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된다. 당신이 그만두면서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충분한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못하고 풀떼기나 뜯어먹어도 상관없다면. 세상이 그냥 그렇다.

오늘은 내가 이룬 성과를 내일 있을 스프린트 리뷰 미팅 때 사람들에게 데모하라고 해서 나도 처음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무슨 데모야 데모는.” “그냥 평화롭게 개발만 좀 하게 날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으으 저 빌어먹을 스크럼마스터. 이상한 일을 만들어서 억지로 시켜!”라고 불평을 했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어제 잠을 설쳐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서 별것도 아닌 걸 과장해 대단한 듯 떠드는 데모 따위에 흥미도 재능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영어도 여전히 자신 있는 상태는 아니고.

내가 이걸 극복하고 데모를 하기로 한 건 위에 말한 테크닉도 좀 썼지만, 사실 그냥 쇠질 좀 하면서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니 내가 사냥해 온 먹이로 우리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이까짓 거 데모든 뭐든, 서툴든 말든 그냥 하면 되지 시발거.”

서툰 데모로도, 서툰 영어로도 내가 돈 잘 벌어다 가족 잘 먹이면 남자는 그걸로 된 거다.

어차피 이런 거 1년 후엔 나도, 아무도 기억 못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