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멸이 아니었다니

에.. 그러니까 내가 인간이라는 이 유한성을 띈 유기체에게 있어 건강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게 겨우 몇 년 전이다. 그전까지는 그냥 뛰놀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부어라 마셔라 밤새도록 놀고 그래도 다음날이면 멀쩡하니까 나는 내가 특별한 노력 없이도 건강하도록 태어난 축복받은 유전자인 줄 알았단 말이지. 그런데 웬걸, 사람은 계단식으로 늙는다며? 멀쩡하다가 한번 훅 오고 또 멀쩡하다가 훅.. 이게 일생에 거쳐 세 번 온다. 그 첫 훅(…)이 서른 다섯 전후라던데, 나는 그때 딱 베를린에 처음 왔거든. 그냥 막 하루 종일 피곤하고, 별 일 안 했는데도 살이 쭉쭉 빠지는 거야. 그래서 나는 좋아라(…) 했지. 날씬해진다고. 아마도 음식이 안 맞나 보다~ 내가 이 새로운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항상 긴장해서 금방 피곤한가 보다~ 하면서.

그 후로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런 그래프를 보게 됐다. 회상해 보니 내가 베를린 왔을 때 딱 저 빨간 선 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살이 막 빠진다고 느낄 때 빠졌던 건 살이 아니고 근육이었던 거. 항상 피곤하다 느꼈던 건 그냥 늙은 거. 아.. 모든 게 설명된다, 모든 게 설명돼…!!

독일로 떠나오기 전 마지막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가 건강한지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불멸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으니 그저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때 결과지를 갖고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그 의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이 정도 콜레스테롤 수치면 지금 당장 문제가 생겨서 죽어도 놀랄 일은 아니에요. 아직 젋어서 당장 직면한 문제가 안 보이는 겁니다.” 내가 불멸의 존재인줄 착각하고 보냈던 시간 동안 내 몸은 안에서부터 망가져가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 저 수치는 어떻게 낮출 수 있냐고 의사에게 질문했더니 방법이 없다는 거다. 무슨 시한부 선고받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없대. 그 뉘앙스가,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양이 미미하니까 설명하기 귀찮아’로 느껴져서 기분 잡쳤다. 의사들은 어째서 둘 중 하나는 저 모양인지. 환자들에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하는 게 귀찮겠지만 어떻게 하나. 본인들이 선택한 길인걸.

어쨌든 방법이 없다니까, 공부해 볼 마음도 없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독일에 왔다. 그 후에 저런 급 노화가 추가적으로 펼쳐진 거. 엄밀히 말하면 문제는 노화 자체가 아니라 노화로 인해 따라오는 몸의 이상이다. 딱 중고차 마냥, 사소하게 여기저기 자꾸 고장 나는 거다. 나의 운전 스타일과는 또 별개로 그냥 자동차가 오래 운용되다 보면 여기저기 부품들에 문제가 생기는 거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맹장 수술 정도로 쉬운 거라고 독일의 또 다른 의사는 나에게 설명을 하면서, 동시에 수술 중 죽을 수도 있음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는 독일어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 했다. 사인을 하지 않으면 수술 중 죽는 경우는 없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조금 생각하던 나는 ‘아, 그러면 내가 수술 중 죽으면 일단 나는 아무 고통 없이 사라지는 거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문제군.’ 하며 사인을 했다. 사인하지 않으면 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거니와, 어서 빨리 내 담낭에 든 돌들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첫 복강경 수술을 독일에서 받았고, 실패했다. 떼어낸 담낭으로 연결되던 담도 끝을 닫지 않은 채로 – 아마도 잊었을 거라 생각한다 – 나의 배를 닫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담즙은 열린 담도를 통해 밖으로 새어 나오며 말 그대로 내 몸을 소화시켰다. 아픈 건 당연하고 이유를 찾아서 내시경으로 추가 시술을 하고 어쩌고 하는 동안 내 체중은 15kg이 빠졌다. 바지가 힘 없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약 먹으면서 변함없는 생활을 할 것인가, 지속적인 노력으로 건강을 관리할 것인가. 선택은 후자였다. 건강을 위해 운동과 식단에 의식적 변화를 주었다. 사실 내 생각은 이렇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고, 한쪽은 건강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는 사람, 다른 한쪽은 건강의 중요성을 늦게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최근 한국에 방문해서 받은 건강검진은 드라마틱하게 개선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나타냈다. 의사들이 숫자 계산을 통해 설명한 최대 개선 가능 수치를 넘어서는 변화였다. 출국 전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지고 방법이 없다 말했던 의사에게 그 종이를 들고 가 얼굴 앞에서 함부로 흔들며 “설명해 봐.”라고 일갈하는 상상을 한다.

…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어째서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죄다 맛대가리가 없고, 반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죄다 건강에 나쁜지에 대해 토로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쓰다 보니 대신 내가 운동과 음식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배경 스토리나 말하고 마무리한다. 운동을 하자.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자. 끝.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