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러운 당신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줄 선물, “1년후”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오호라.. 그러니까 인간은 이미 오랜 과거로부터 걱정에 시달려 왔다는 말이군. 이런 말이 지속적으로 공감을 얻으며 전해져 내려올 정도면 이런 감정을 아주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하겠군. 사실 이런 류의 감정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라도 인간이 걱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어느 시점에 걱정이 사라진 인류를 볼 수 있게 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일단 걱정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일은 없어야겠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치열히 걱정해 결국 모든 걱정들을 해결해 내는 것뿐인가? 우리와 같은 많은 프로 걱정 전문가들은 이런 방법이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걱정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배워 왔기 때문에 썩 좋지 않은 생각임을 알고 있다. 히드라와 싸우던 헤라클레스가 잘라낸 히드라의 머리에서 새로운 머리 두 개가 솟아 나오는 모습에 ‘음?’하며 어리둥절해해서는 안된단 말이지.

결국 우리의 마지막 희망의 선택지는 걱정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고, 효과적으로 걱정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뜨뜻미지근한 방법뿐이지 않겠는가. 여기서 효과적으로 걱정을 한다는 건 많은 종류의 걱정들 중 진짜 걱정을 골라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아 이건 생각만 해도 불알이 쪼그라들 정도로 진짜 중요한 걱정임을 어떻게 불알 없이도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심사숙고를 통해 내리는 결론보다 직관적으로 내리는 결론이 나은 경우는 언제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관은 연필 굴리기와는 다르다. 그동안 살아오며 쌓아 온 나의 직간접적 경험이 설명할 수 없는 사고과정을 순식간에 거쳐 즉각적으로 내놓는 답변이다. 어째서 그런 답을 내놨는지는 설명할 수 없기에 “그냥 촉이 와.”라고 퉁치는 거다. 직관은 빅데이터로 학습한 ChatGPT가 답을 내놓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ChatGPT는 자기가 내놓는 답의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직관적으로 그런 답변이 나오는 거고,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더 옳은 답이 나올 확률이 올라가는 거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미 당신의 무수한 경험을 통해 이 걱정이 진짜로 중요한 사안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당신은 그다음 기회에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일을 하다가 내 말을 번복해야 할 경우가 생겼다. 미팅을 통해 팀원들과 함께 결정한 업무의 난이도가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난이도는 사실 내가 팀에 말한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게 됐다. ‘아..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야 하는데 지금 내 말을 뒤집기엔 실력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 너무 경솔하게 이런 기능이 쉽게 가능하다 말했어. 분위기에 휩쓸려서 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고 내가 이런 일쯤은 쉽게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냥 입을 다물고 이 일을 꾸역꾸역 해내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내가 경솔하게 너무 쉽게 말했다고 인정하고 차선책을 상의할까?’라는 고민을 좀 하다가 문득 ‘내가 1년 후에도 이 상황을 떠올리며 그때 참 고민스러웠지 하며 회상할까? 내가 내 말을 번복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1년 후에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당연히 “네버“였다.

나는 즉시 팀에 차선책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에 상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팀원들도 수긍했다. 좋은 결과였다.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던진 덕택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름 붙인 ”1년 후“ 질문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불행히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팀원들이 실망스러워하거나 나의 실력에 의심을 표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내 결론은 변함없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종류의 빌런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아끼는 나다. 어차피 “1년 후”엔 나도 팀원들도 기억하지 못할 일이다. 사실 오히려 이런 거침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는 회사에서 하는 일들의 대부분이 중요함과 동시에 1년 후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생각한다. 회사 내에서 1년 후에도 기억될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고, 그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큰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일터를 포함해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런 영양가 없는 걱정을 하는 경우는 널리고 널렸다. 나의 뉴런들이 꼭 필요한 걱정을 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쓰도록 필요 없는 걱정을 의도적으로 필터링해줘야 한다. 양분을 주지 않고 관심을 끊으면 가짜 걱정들은 사라진다. 그걸 가려내기 위해 잊지 말고 해야 할 질문이 바로 “1년 후” 질문이다. 아직도 동의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1년 전에 무슨 걱정으로 고민을 했었는지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러니 지금 그 영롱한 애플워치를 주문해라. 참고 있던 치맥을 먹어라. 타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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